세포가 살아가는 터전도 함께 늙어간다
우리 몸의 세포는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세포와 세포 사이에는 조직의 형태를 지탱하고, 세포가 제자리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둘러싸는 정교한 환경이 존재한다. 이것이 세포외 기질 (Extracellular Matrix, ECM)이다.
세포외 기질을 이루는 대표적인 성분에는 콜라겐 (collagen), 엘라스틴 (elastin), 프로테오글리칸 (proteoglycan) 등이 있다. 콜라겐은 조직에 강도와 형태를 부여하고, 엘라스틴은 피부와 혈관, 폐처럼 늘어나고 다시 돌아와야 하는 조직에 탄성을 제공한다. 프로테오글리칸은 물을 끌어당겨 조직의 수분과 점탄성을 유지하며, 히알루론산 (hyaluronan) 역시 세포 주변의 수분과 공간, 신호 환경을 조절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러한 성분들의 종류와 배열은 조직마다 다르다. 뼈에서는 단단한 골격을 만들고, 연골에서는 압력을 견디게 하며, 피부에는 탄력과 유연성을 제공한다. 혈관과 근육, 폐와 간에서도 각각의 기능에 맞는 세포외 기질이 만들어진다. 세포외 기질은 세포가 살아가는 터전이자 조직의 구조와 물성을 결정하는 바탕이다.
세포와 세포외 기질은 서로 대화한다
세포외 기질은 세포를 붙잡아 두는 지지대에 머물지 않는다. 세포는 자신을 둘러싼 기질의 구성과 단단함, 장력과 같은 물리적 특성을 감지하고, 그 정보를 세포 안으로 전달한다. 이러한 신호에 따라 세포는 성장하고 분화하며 이동하고, 손상된 조직을 회복한다.
반대로 세포 역시 자신이 살아가는 환경을 끊임없이 바꾼다. 섬유아세포 (fibroblast)를 비롯한 여러 세포가 콜라겐과 엘라스틴, 프로테오글리칸 등의 기질 성분을 만들고, 오래되거나 손상된 기질을 분해하고 다시 배열한다. 이렇게 세포외 기질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고 분해되며 재배열되는 과정을 세포외 기질 재형성 (ECM remodeling)이라고 한다.
따라서 세포와 세포외 기질의 관계는 한쪽 방향이 아니다. 세포가 세포외 기질을 만들고, 세포외 기질은 다시 세포의 행동을 조절한다. 같은 세포라도 어떤 기질 위에 놓여 있는지에 따라 증식과 분화, 유전자 발현과 대사가 달라질 수 있다.
나이가 들수록 터전의 성질도 달라진다
세포외 기질 역시 평생 같은 상태로 유지되지 않는다. 오래된 성분은 분해되고 새로운 성분이 만들어지며 조직의 필요에 따라 끊임없이 재형성된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생성과 분해의 균형이 달라지고, 오랫동안 남아 있는 기질 단백질에는 여러 화학적 변화가 축적된다.
대표적인 변화가 당화 (glycation)와 교차결합 (cross-linking)이다. 특히 수명이 긴 콜라겐에는 당과 단백질의 반응으로 만들어지는 최종당화산물 (Advanced Glycation End-products, AGEs)이 축적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콜라겐 섬유 사이의 교차결합이 증가하면 섬유들이 서로 단단하게 묶이고 조직의 유연성은 떨어진다. 산화 스트레스와 만성 염증 역시 기질의 생성과 분해, 재배열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변화가 오랜 시간 축적되면서 세포외 기질의 점탄성 (viscoelasticity)과 기계적 성질이 달라지고 조직은 점차 경직될 수 있다. 피부의 탄력이 감소하고 혈관이 뻣뻣해지며, 폐와 근육, 관절을 비롯한 여러 조직의 물성이 나이에 따라 달라지는 데에도 세포외 기질의 변화가 관여한다.

재형성의 균형이 달라지면 조직도 변한다
세포외 기질의 재형성은 정상적인 회복 과정에 반드시 필요하다. 조직이 손상되면 섬유아세포가 활성화되고 콜라겐을 비롯한 기질 성분을 만들어 손상된 공간을 복구한다. 회복이 이루어지면 생성과 분해가 다시 균형을 이루면서 조직의 구조가 유지된다.
노화된 조직에서는 만성 염증과 지속적인 손상 신호, 세포 노화 등이 이러한 균형에 영향을 준다. 기질의 생성과 분해가 적절하게 조절되지 않으면 콜라겐을 비롯한 성분이 과도하게 축적되고 조직이 두꺼워지고 단단해질 수 있다. 이러한 변화가 지속되는 것이 섬유화 (fibrosis)이다.
변화된 세포외 기질은 다시 그 안에 있는 세포에 새로운 기계적·생화학적 신호를 보낸다. 경직된 환경에서 세포의 행동이 달라지고, 그 세포가 다시 기질의 생성과 분해를 변화시키면서 조직의 미세환경도 계속 바뀐다. 세포와 세포외 기질은 이렇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변화한다.
여러 Hallmark가 만나는 곳
세포외 기질의 변화는 지금까지 살펴본 여러 Hallmark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세포 노화 (Cellular Senescence)가 대표적이다. 노화세포가 분비하는 노화 관련 분비 표현형 (Senescence-Associated Secretory Phenotype, SASP)에는 염증성 사이토카인뿐 아니라 세포외 기질의 생성과 분해를 변화시키는 여러 인자가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주변 기질의 구성과 구조를 바꾸고 조직의 미세환경을 재편한다. 반대로 변화된 세포외 기질 역시 세포의 기능과 노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Mavrogonatou et al., 2023).
세포외 기질과 미토콘드리아 기능장애 (Mitochondrial Dysfunction) 사이의 연결도 발견되고 있다. 2024년 Cell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세포외 기질의 재형성이 TGF-β 신호를 통해 미토콘드리아의 분열과 스트레스 반응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세포 바깥에서 일어난 변화가 세포 안의 미토콘드리아 항상성까지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이다 (Zhang et al., 2024).
줄기세포 고갈 (Stem Cell Exhaustion)과도 연결된다. 줄기세포는 자신을 둘러싼 특별한 미세환경인 줄기세포 틈새 (stem cell niche) 안에서 살아간다. 이 환경의 구성과 물성이 달라지면 줄기세포가 받는 신호 역시 달라지고, 자기재생과 분화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세포외 기질은 세포 노화와 만성 염증, 미토콘드리아 기능, 줄기세포의 재생 능력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공통의 터전인 셈이다.
왜 세포외 기질이 새로운 Hallmark가 되었을까
2013년 처음 제시된 Hallmarks of Aging은 아홉 가지였다. 2023년에는 거대자가포식 기능 저하, 만성 염증, 장내미생물 불균형이 더해지면서 열두 가지로 확장되었다. 이후 노화 연구의 시야가 세포 내부에서 세포가 살아가는 조직과 환경으로 넓어지면서, 세포외 기질의 변화 (Extracellular Matrix Alterations) 역시 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축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2025년 López-Otín과 Kroemer는 Hallmarks of aging: Integrating molecular and social determinants에서 확장된 노화의 틀을 제시하면서 세포외 기질의 변화를 13번째 생물학적 Hallmark로 포함하였다. 이 관점에서 노화는 세포 내부의 분자적 손상이 축적되는 과정뿐 아니라, 세포가 살아가는 물리적·생화학적 환경까지 함께 변화하는 과정으로 확장된다 (López-Otín & Kroemer, 2025).
세포외 기질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연구도 있다. 장수 동물로 알려진 벌거숭이두더지쥐 (naked mole-rat)는 매우 큰 분자량의 히알루론산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다. 벌거숭이두더지쥐의 히알루론산 합성효소 2 (Hyaluronan Synthase 2, HAS2) 유전자를 생쥐에 발현시킨 연구에서는 염증 감소와 건강수명 개선, 수명 연장이 관찰되었다. 동물 연구라는 한계가 있지만, 세포외 기질의 구성 변화가 개체의 건강과 노화에까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보여준 연구이다 (Zhang et al., 2023).
세포에서 조직으로
지난 열두 개의 Hallmark를 따라오면서 우리는 DNA의 손상에서 시작해 텔로미어와 후성유전 변화, 단백질과 자가포식, 영양 감지와 미토콘드리아, 세포 노화와 줄기세포, 세포 간 의사소통과 만성 염증, 장내미생물까지 살펴보았다.
그리고 열세 번째 Hallmark에서 시선은 세포를 둘러싼 공간으로 향한다.
세포가 변하면 자신을 둘러싼 세포외 기질도 달라지고, 변화된 세포외 기질은 다시 그 안에 살아가는 세포의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변화가 오랜 시간 쌓이면 조직의 구조와 탄성, 회복력도 함께 달라진다.
세포외 기질이 새로운 Hallmark로 등장한 것은 노화과학의 시야가 세포에서 조직으로 넓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건강한 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포의 상태와 함께, 그 세포가 살아가는 환경의 변화도 바라보아야 한다.
세포가 늙어가는 동안, 세포가 살아가는 터전도 함께 늙어간다.
노화의 다음 이야기는 Hallmark #14. 사회적 고립과 정신질환 (Psychosocial Isolation and Mental Illness)이다. 이제 세포와 조직을 넘어, 우리가 맺고 살아가는 관계와 마음의 건강이 노화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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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1. López-Otín C, Kroemer G. Hallmarks of aging: Integrating molecular and social determinants. Geromedicine. 2025;1:202507. doi:10.70401/Geromedicine.2025.0007.
2. Mavrogonatou E, Papadopoulou A, Pratsinis H, Kletsas D. Senescence-associated alterations in the extracellular matrix: Deciphering their role in the regulation of cellular function. Am J Physiol Cell Physiol. 2023;325(3). doi:10.1152/ajpcell.00178.2023.
3. Zhang H, Tsui CK, Garcia G, Joe LK, Wu H, Maruichi A, et al. The extracellular matrix integrates mitochondrial homeostasis. Cell. 2024;187(16):4289-4304.e26. doi:10.1016/j.cell.2024.05.057.
4. Zhang Z, Tian X, Lu JY, Boit K, Ablaeva J, Tolibzoda Zakusilo F, et al. Increased hyaluronan by naked mole-rat Has2 improves healthspan in mice. Nature. 2023;621(7977):196-205. doi:10.1038/s41586-023-064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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